향후 일정과 전망

 유럽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평가) 결과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이 15일 발표한 결과를 놓고 유로존 정부와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금융시장 불안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논평들을 내놓았다. 반면 부적격으로 판정받은 은행들은 물론 그들이 소속된 국가 당국은 EBA의 기준이 개별 국가와 은행의 독특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반발하면서 평가 결과의 의미를 축소하고 나섰다. 또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지난해 스트레스 테스트가 `부실 평가’로 지탄받은 점을 수용해 한층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적용했다는 이번 테스트 역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서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EBA는 평가의 투명성을 높였으며, 결과 발표로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로존 당국과 회원국 정부들은 테스트에 탈락한 은행들이 파산 등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지원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펴 나아갈 것이라고 재차 다짐하며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려 했다. 이에 따라 민간 투자 및 경제 분석가들이 EBA의 발표 자료를 토대로 개별 은행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마치고 내주 금융시장이 열려 투자자들이 실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리스 사태에서 비롯된 유럽 재정위기의 향방에 미칠 영향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 테스트 어떻게 진행됐나 = 스트레스 테스트는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악조건을 가정하고 은행들의 탄력성, 즉 이를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가상의 악조건에는 예컨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망치보다 평균 4% 떨어지고, 주가가 올해와 내년에 15%씩 떨어진다든가, 시장금리가 6% 포인트 오르는 등의 거시 경제 악화 상황이 포함됐다. 여기에 국가부도 위험을 감안해 은행이 보유한 각국 국채(5년물)의 가치가 최고 25%(그리스)에서 최저 4%(독일) 떨어져 은행들이 대손처리를 하는 상황을 가정한 평가도 이뤄졌다. 이런 가상 조건에서 은행이 버틸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는 이른바 `위험 가중 자산(RWA)’으로 불리는 핵심 자기자본비율(CT1)이 최소 5%를 넘느냐가 설정됐다. EBA는 가상의 조건 중에 성장 하락률은 지난해 3%에서 이번엔 4%로 잡았으며, 국채 대손처리 비율 최고치도 23%에서 25%로 높이는 등 전반적으로 평가 기준치를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또 무엇보다 올해엔 훨씬 방대한 분야에 대해 평가했으며, 지난해 공개된 평가 결과는 100 개 항목에 불과했으나 올해엔 개별 은행 보유 국채의 만기와 규모뿐아니라 자본의 질, 올해와 내년 2년간 수익 전망 등을 포함해 모두 3천 개 항목을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평가는 각국 금융감독 당국이 자국 은행들을 1차로 점검한 후 EBA가 각국 금융당국 및 유럽중앙은행(ECB), 유럽 금융시스템 위험관리위원회(ESESRB)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 부적격 판정받은 은행과 당국 거센 반발 =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은행들은 당장 주가가 떨어지고 자금 조달 시 금리도 높아지는 한편 나아가 자칫 생존 자체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탈락 은행들과 그 소속 국가 당국은 거센 항변을 하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탈락한 8개 은행 중 5개 은행이 포함된 스페인의 경우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이 직접 “EBA가 스페인의 독특한 상황과 위기에 대응한 별도의 충당금 적립 방식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댔다”면서 “평가 결과는 부적격 판정을 받은 스페인 은행들이 추가로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평가 의미를 축소했다. 미구엘 앙헬 오르네스 중앙은행 총재는 또 “다른 나라의 경우 4-5개 또는 그 이하의 은행만 참여했으나 스페인은 은행업의 95%를 차지하는 25개 은행이 자발적으로 평가에 참여했다면서 우리도 몇 개만 참여시켰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CT1이 기준치(5%)를 약간 밑도는 4.9%로 평가돼 탈락한 그리스의 유로뱅크 EFG는 “일반 충당금과 자본 확충 계획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면서 기존 계획 외에 추가로 자본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또 오스트리아의 폴크스방켄은 자회사 매각과 추가 자본 조달 계획이 반영됐을 경우 통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독일의 헤센-튀링겐주 은행(헬라바)의 경우 독일 당국도 인정한 비의결권 주식을 EBA가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CT1 5% 기준을 밑도는 것으로 자체 평가결과가 나오자 발표 이틀 전에 평가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당초 91개였던 평가 대상 은행이 90개로 줄었다. EBA는 평가 참여를 강요할 권한이 없다. ◇ 투자 기관 등 불만 토로 = 당초 시장에선 최소 5개, 대체적으론 10-15개 은행이 탈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탈락 은행들이 추가로 마련해야 할 자본이 최소 1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EBA가 부적격 은행은 8개,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 규모는 25억 유로인 것으로 발표하자 축소 평가한 것이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EBA는 불합격 판정을 간신히 면했으나 CT1이 6% 미만인 16개 은행도 자본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정말로 엄격한’ 평가를 했을 경우 이들 은행 중 상당수가 탈락했을 것이며, 필요한 자본 확충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 & P)는 자체 실시한 유럽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채권 수익률이 급등하고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될 경우 필요한 신규 자본이 2천5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반면 골드만 삭스 그룹이 113개 투자기관을 상대로 한 조사에선 290억 유로가 필요할 것 예상됐다. 투자기관 등은 무엇보다 그리스가 국가부도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EBA 테스트에선 그 가능성이 아예 배제됨으로써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의 위험도가 과소평가됐다고 지적했다. 또 EBA는 그리스 국채 보유자의 평균 손해율을 약 15%로 평가했으나 대부분 시장 전문가들은 최고 50%에 이를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 향후 일정과 전망 = 탈락 은행들은 자본 확충 등 자구계획을 오는 9월 말까지 제출하고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이행해야 한다. 또 간신히 탈락을 면한 은행들도 자본 확충 등 재무 건전성 제고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EBA는 권고했다. 이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필요한 각종 지원 조치를 할 것이라고 이미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밝힌 바 있다. 개별 은행의 부실이 자칫 국가 금융시스템과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유럽 재정위기를 심화시켜 유로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은행에 국민세금을 쏟아붓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EBA와 ECB 등은 이번 테스트가 은행 재무 건전성을 사전에 철저하게 점검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상시적 시스템’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려 안간힘을 썼다. 기관 투자가들은 이번 평가 결과는 미흡하지만 각 은행별로 10쪽 안팎에 이르는 방대한 테스트 결과 자료들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유럽 금융 산업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단 EBA 발표 이후 뉴욕 증시에선 유럽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이 예상보다 양호하다는 평가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EBA 발표 자료에 대한 기관 투자가들의 자체 평가 결과들이 나오는 내주에야 시장의 본격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업계와 유로존 일부 관리들은 기관 투자가들이 EBA 테스트 자체에 내재된 약점이나 개별 은행들의 약점을 찾아내 공격할 경우 금융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EBA는 이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에는 가장 치명적인 불확실성을 낮춤으로써 결국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