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5계절, 이제 그만둡니다.

택배는 ‘추석’이 시작되는 10월부터 ‘설’이 있는 2월까지 성수기입니다.
그렇다하여도 홈쇼핑을 독점하는 메이저 택배회사들의 물량은 조금 줄뿐이지 바쁘게 돌아갑니다.
 
인터넷이나 홈쇼핑 초기인 2000년도에 비하여 택배물량이 현재 5배 증가했으니, 어마어마하죠.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택배 이용건수는 평균 68건이라고 합니다.
케이블 방송의 홈쇼핑 체널이 몇개나 되는지 분간도 안갑니다.
 
아파트 재활용장은 포장박스가 산처럼 쌓여있고, 쓸만한 중고제품이 봇물을 이룹니다.
한 여름이 지나면 쓸만한 선풍기는 고개를 숙이며 재활용장에 버려지기 일쑤이고, 컴퓨터나 모
니터 그리고 가전제품들이 쏟아집니다. 철지나면 소모품이 되버리는 겁니다.
 
현대문명이 당장에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했지만, 이어져 따라오는 기후의 변화나
생태계의 오염과 교란은 뒷전입니다. 입으로만 걱정이고 행동은 따르질 못합니다.
자식들이나 후대에는 물질문명의 과소비로 돌이킬수 없는 후회를 하겠지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식 사랑은 그저 냄비 사랑일 뿐입니다.
 
택배를 하면서 재활용장에서 줏어 모은 고물 중에서 지금 글쓰는 컴퓨터 CPU가 쿼드코어인
Q6600이고, 옆에는 자식들 게임용인 I-5가 있습니다. 모니터는 주연테크 27인치와 삼성제품
20인치가 있고 프린터는 삼성 흑백레이저와 엡슨 복합기도 있네요. 잘 돌아갑니다.
H사 스팀 물걸레 청소기와 진공청소기 그리고 안마기 등 셀 수가 없네요.
 
택배란 직업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참 힘듭니다.
허리가 만성통증으로 고생하고 어깨나 팔, 다리가 결립니다. 주어 온 맛사지기나 적외선물리
치료기를 이용하면 통증은 잠시 사라지지만, 당장에 일은 또 시작됩니다.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중에는 진상(블랙컨슈머)이 적지않습니다.
몇만원 택배물에 목숨걸고, 택배기사를 욕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택배기사는 묵묵부답이죠.
바쁜 날에 늦었다고 욕하면서 멱살잡는 이가 있었고, 시동 켜놓은 차 소리가 싫다고 욕하면
서 골프채를 휘드른 이가 있었고, 얼굴에 침을 밷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두 형사처벌로
벌금을 물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꼬라지를 보기 힘듭니다.
 
물론, 불량한 택배기사도 있을 겁니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는데 훅 경비실에 맡겨 놓거나, 무거운 것을 무인함이나 경비실에 놓고
가는 경우도 있겠지요. 배송 전, 전화하여 집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전화를 받지 못하
는 경우가 열 중에서 셋은 됩니다. 이를 알기에 제1원칙은 일일히 집을 방문합니다.
그래도 없을 경우에는 물건의 소재에 대하여 문자로 알려줍니다. 시간이 좀 걸리죠.
 
택배 일 한것이 1년 좀 지났는데, 난 세상 여행한다는 가치로 살았습니다.
잃은 것과 얻은것이 샘샘이니 후회 할 것이 없지요. 바람 따라서 날아 다녔고 구름 쫒아서
하루 해를 넘겼는데 그렇게 짧게 동이 트고 해가 졌습니다.
 
그만두기 일주일 정도가 남았는데, 둘째 자식도 3월 초면 제대합니다.
택배를 그만두니 저도 아들과 같이 제대하는 기분이네요. 무엇을 하더라도 1년은 해봐야
한다는 소신이었으니 자신과의 소신을 지킨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고 할 일이 없는 세상이라는데,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염려하는 이도 있습
니다만, 당장은 한달 동안은 몸과 마음을 달래면서 개나리, 진달래 개화하듯 할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할 일이 태산입니다.
 
한 고객은 그동안 정들었다면서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하였고, 아파트 경비들도 이제가면
언제 볼지 모른다고 아쉬움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택배란 직업은 잠시 할 만한 직업일 듯
도 한데 오래 할 일은 못됩니다.
 
국회의원들 출마하는 조건으로 혹한(체감 영하30도)에 택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붕만 있고 바람막이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새벽부터 10톤 화물차에서 쏟아지는 택배물을 고르자면 장갑 두켤레를 끼어도 금새 손, 발은
꽁꽁 얼어붙고 맙니다. 여간의 고생이 아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