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두천룡을 지구 생명권에 강하시킨 위험을 똑똑히 보라!

『 경제 과학 통신』126호, 2011년 9월에 발표되었던  후지오카 아츠시 씨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의 논문을 캐나다에 거주하는 노미마츠 사토코씨가 운영하는 peace philoshophy centre라는 블로그에 전재한 것입니다.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신다면 후쿠시마 사고의 전모를 파악하실수 있게될 것입니다.

인용출처 : http://peacephilosophy.blogspot.kr/2011/09/blog-post.html

원폭과 원전의 쌍두천룡
 
후쿠시마에서 진행중인 핵재앙을 어떻게 보는가
 
-쌍두천룡을 지구 생명권에 강하시킨 위험을 똑똑히 보라
 
후지오카 아츠시
 
글을 시작하며
 
올 여름 17번째가 되지만, 아메리칸 대학의 피터슨 · 카즈닛쿠 교수를 리더로 하는 17명의 미국인 그룹, 아시아 국가들에서 7명의 국제 학생, 16명의 일본 학생들과 함께 히로시마 · 나가사키를 둘러싼 ‘평화 순례’를 하고왔다.  11일간의 여행속에서 “후쿠시마 핵 참사와 히로시마 · 나가사키의 관계”에 대해 반복하여 토론했다.  캐나다측 코디네이터와 통역을 맡아 주신 노리마츠 사토코씨, 고토 센다이씨에게 소개받은 후쿠시마 현립 의과대학의 2명의 학생은,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 중 통감한 것은 돌아가신 다카기 진자부로씨 (원자력 자료 정보실)의 지적비전이다. 체르노빌 핵 참사는 1986년 4월 23일에 일어났는데, 그 직후의 단계에서 타카기씨는 다음과같이 쓰고 계셨다.  “핵기술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천상의 기술을 지상에서 손에 넣는것과 같다. … 핵반응이라고 하는, 천체에서만 존재하고 지상의 자연에선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 현상을 지상에서 이용할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 심각하다. 모든 생명에게 방사선은 그에 대해 전혀 방어기능이 없는 위협이며, 방사선은 지상 생활의 영위의 원리를 교란하는 물체이다. 우리의 지상의 세계는 생물계를 포함하여 기본적으로 화학 물질로 구성되어 …이 순환은 기본적으로 화학 결합과 분해등 화학 과정의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핵 문명은 그렇게 파멸의 순간을 항상 시한 폭탄처럼 그 태내에 잉태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이 위기는 ··· 지금까지의 것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금 그 시한장치가 똑딱거리며 시간을 가리키는 소리가 드디어 크게 우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까 ” (다카기 진자부로 「체르노빌 원전사고 신장판」1986년 나나츠모리 서관). 

25 년 전 다카기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한 히로시마 · 나가사키에서 피폭의 심각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시한 장치의 똑딱이는 소리를 듣는 힘을 국민적 규모에서 펼쳐내는데 우리는 실패해 왔다.  그 배경 하에서 불행하게도 2011년 3월 11일이 왔다. 이번 파국적인 사태가 사회 과학 연구에 어떠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하늘의불’에서 분리 – 지구생명권 형성의 의미

타카기씨가 역설한 바와 같이, 원자핵 내부의 핵반응 (핵융합 · 핵분열) 이야말로 ‘하늘의 불’이라고도 할 수있는 우주의 본래 에너지의 근원이었다. 분명히 일정한 화학 반응 (원자핵의 가장 먼 궤도를 도는 전자를 다른 원자의 전자와 교환함으로써 원자의 결합체 = 분자를 만들려고 하는 반응)이 성간 공간에서 시작되었지만, 핵 반응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이온화 방사선이 난무하는 세계가 우주계(천계)의 압도적인 모습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36억년 전에 지구라는 행성의 깊은 바다의 바닥에서 더 복잡하고 유기적인 화학 반응의 세계를 만들어 내기위한 한 걸음을 내딛어 원시적인 「생명」이 탄생했다. 생명의 옮겨담기가 행해지는 권역 (지구 생명권)이 심해 바닥에서 태어난 셈이다. 

당시 지구 표면을 덮고있는 원시 대기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되어 있었고, 기온은 높고, 태양에서 유해한 자외선과 이온화 방사선이 가득하고 가혹한 세계였다. 자외선은 생물의 체표 세포를 손상시키고, 이온화 방사선은 몸을 통과하여 체내 세포의 DNA를 절단해 버린다. 이러한 유해한 방사선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만 원시 생명체가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원시의 바다에 흡수되어 갔던 이산화탄소는 바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 덕분에 탄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탄소는 석회암으로 되어 해저에 가라앉았고, 산소는 대기중에 방출되었다. 대기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산소의 일부는 자외선과 이온화 반응을 일으켜 오존(03)이 되어, 지상 20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의 성층권에 오존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천계의 핵반응 에너지가 보내는 자외선이나 X선을 차단하고 지구 생명권을 지켜 내기위한 구조가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생물이 육지에 올라 살수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 육상에서도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더욱 떨어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0.04%, 산소 농도는 21%의 생명권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부절(符節)을 맞추는 것처럼 두꺼운 대기권이 형성되어 태양이 발하는 이온화 방사선의 대부분을 차단할수있게 되었다. 실제로 4백킬로미터 상공을 도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 사는 우주인은 하루에 1밀리 시버트라는 살인적인 이온화 방사선을 받고있는 것이지만 지상에 닿는 방사선량은 750분 1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방사선의 대부분은 두꺼운 대기층에 가려져 지상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다. 

천체 형성의 원동력은 핵반응 에너지인 것을 먼저 말했다. 지구의 경우 금속 물질로 이루어진 중심핵과 점탄성체의 암석층으로 이루어진 맨틀층 안에서는 지금도 핵 반응이 진행되어 지열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두꺼운 지각층이 형성되어 생명권을 지구 심부(지하)의 핵반응 에너지로부터 방어하는 구조도 태어났다. 분명히 인도 케랄라주와 브라질 남동부 연안처럼 마그마 떠오른 화강암 지대에서는 방사성 동위 원소를 포함하는 지층이 노출되어 있다. 이같은 땅에 계속 거주하면 연간 10밀리 시버트 정도의 자연 방사선을 받게되므로, 우주와 같이 거주금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포의 DNA를 절단하는 이온화 방사선이 적을수록 생명체는 건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의 표면에 지구 생명권이 형성되어 왔다. 지구 생명권이라는 것은 표면에서 위쪽으로 15킬로미터 해수면 아래에서 10킬로미터 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는다. 위와 아래를 합쳐도 고작 25킬로미터의 두께밖에 되지않는 것이다. 지구를 “사과”에 비유하면 “사과”의 표피보다 얇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고 할수있다. 그래도 지구상의 생명들이 30 억년 이상 협동활동의 귀중한 산물이 바로 지구 생명권이다. 이 생명의 세계를 지켜 내고, 후세에 전해가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보람있는 사명이 아닌가. 

“핵문명”-우주사적 반동성

핵반응 에너지의 지구 표면의 흔적이라고 할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을 긁어 모아 TVA (테네시 계곡 개발 공사)의 전력을 이용하여 이것을 농축하고, 지구 생명권 안에서 핵반응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대한 군사개발 체제가 제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가격으로 20억 달러 남짓을 투입해 시작된 맨해튼 계획이 그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고 할 군산 복합체가 ‘천상의 불’을 훔치려 시작한 계획이며, 우주사적으로는 생명의 원리에 역행하고 지구를 36억년 전으로 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인 계획이었다. 

원폭 재료인 플루토늄을 만들어 내기위한 생산원자로가 미국 북서부의 핸 포드에 건설되었다. 생산 원자로에서 나오는 최대의 쓰레기는 막대한 열이었다. 핸 포드는 폐열을 컬럼비아강에 흘려 보냈지만, 폐열을 이용하여 잠수함을 추진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것에 주목한 것이 「원자력 잠수함의 아버지」인 하이먼 리코바 제독이었고, 일렉트릭 보트사(社)였다. 이어 핵 잠수함용 원자로를 육지로 옮겨 전력을 미국 경제의 동력원으로 사용하여 그 양산 효과로 원자력 잠수함용 원자로의 비용 절감과 “자유 세계”의 에너지 지배를 도모하려는 것이 미국의 에너지 산업계의 과제가 되었고, 후쿠시마 제 1원전이 건설된 이유였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마크 Ⅰ형 원자로이며, 2호기 이후도 동종의 원자로가 되었다. 

‘핵 천룡’은 지구 생명권에 내려서서 두가지 변화를 이루었다. 첫째는 ‘핵폭룡(暴龍)’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핵폭탄’의 모습. 또 하나는 ‘핵요룡(妖龍)”이라고 할 「원자력 발전」이라는 모습이었다. 우주계의 ‘하늘의 불’을 맡고 있던 ‘천룡’은 지구 생명권에 강하하여 두 얼굴을 가진 ‘핵괴룡(怪龍)’”이 되었고, 지구상에서 똬리를 틀게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핵괴룡’은 얼마만큼 세금을 먹어치우면서, 어디까지 커지게 되었는가. 미국은 핵군비 확장에 6조 달러, 우주개발에 1조 달러를 사용하여 5만발의 핵폭탄과 핵탄두를 만들어 왔다. 한편, 원전개발에 6000억 달러의 세금이 투입되어 국내에 104기의 원자로를 건설했을뿐아니라 동맹국에 수출하였다. 소련을 선두로 하는 동구권도 원전 개발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좌익 세력의 대부분은 원전을 생산력의 상승을 가져오는 진보적인 시도라고 오인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434기의 원자로가 만들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하에 올해 3월 11일에 도호쿠 지진이 일어났다. 우선 3월 11일 이후 후쿠시마의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객관적 사실의 확정에서 시작하자. 

멜트다운에서 멜트스루로

 토호쿠 지진은 후쿠시마 제 1원전을 직격해, 다음 12일 오후 3시 1호기가, 14일 오전 11시 3 호기가, 15일에는 2호기 · 4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켰다.  21일이 되면 3호기에 다시 기괴한 폭발이 일어났다. 

나중에 쓸 노리마츠씨의 보고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3월 14일에 일어난 3호기의 폭발은 펑 · 펑이라는 강력한 폭발 소리를 따라 수백미터 상공까지 버섯 구름이 솟아 올랐다. 이 끔찍한 장면은 해외에서 동영상을 첨부하여 상세하게 전해졌다.  ‘히로시마의 나라’에서 체르노빌에 필적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을 외국인이 먼저 더 정확하게 안 것이다.  노리마츠씨로부터 배우고, 이 음성이 들어간 영상을 본 나는 충격을 받았다.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자란 타카하시 테츠야씨도 이렇게 썼다.  3호기는 우라늄과 섞어 사용된 플루토늄이 ‘반응하여 순시간에 임계 상태가 되었고, 미니 핵폭발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영상을 보면 확실히 검은 연기가 확 위로 올라서 버섯 구름같은 모양이 된다. 그것을 반복하여 유튜브에서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히로시마가 상기된다.’ ( 「세계」2011년 8월호, 112 페이지). 

그러나 NHK는 이런 종류의 동영상 방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요 언론들도 진행되고 있는 핵 재앙을 가능한 한 작은 것,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낮추어 전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중의 ‘대본영 발표’와 유사한 보도 관제가 깔린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지배층에게도 진상은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 초기에 ‘미국은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의 정보에서 원자로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을 파악하고’ 연료가 이미 녹아 있다 “고 판단하고 정확한 정보의 공유를 일본측에 압박하였다.’( 「요미우리 신문」2011년 8월 17일자).  3월 16일 새벽에는 더이상 정보의 비공개를 계속한다면 “도쿄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9만명을 일본에서 긴급 대피시키는 명령을 내린다. 도쿄가 패닉이 되어도 좋은것인가?”라고 위협하여 결국 대책 본부에 미국인 전문가의 대량 진주 = 재점령을 일본 정부에 인정케 하였다. 

일본국민에 대한 정보통제의 태세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지진발생 5시간 후에는 이미 1호기는 노심용융 (멜트다운)을 일으킨 것, 그 며칠 후, 다른 3개도 멜트다운 (핵 연료봉이 녹아 용광로의 바닥에 쌓이는 단계)에서 멜트 스루 (녹은 핵연료가 원자로의 바닥을 관통하여 노 밖으로 나가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 것은, 사건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6월 6일의 일이었다 . 

3월15일 최대규모의 방출

폭발과 “벤트”(원자로에서 의도적인 배출)을 통해 언제 ·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 = 방사능이 대기 중에 방출된 것일까 . 지진 하루 뒤인 12일 1호기가 14일에는 3호기가 폭발한 방사능의 방출 규모는 아직 그만큼 크지는 않았고, 바다 쪽을 향해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 오염은 아직 작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4일 저녁에 2호기에서 노심 노출이 발생해 원전 주변의 방사선량이 오르기 시작했다. “최대의 위기가 15일 찾아왔다. 3월 15일 오전 6시경에 2호기의 압력억제실이 수소 폭발로 파손되었다. 같은 시각에 정기 검사에서 냉온중이던 4호기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4 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풀(pool)에 최대의 핵연료 집합체가 들어가 있어 상당수의 핵연료가 파손 용해되어, 방사성 물질을 방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 「아사히 신문 “2011년 7월 10일자). 

그 결과 15일 오전 9시 방사선 구름 (플룸)이 형성되었다. 플룸은 처음에는 남서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움직여 방사능은 후쿠시마현 나카도리 지방에 낙하했다. 

이날 저녁부터 밤에 “악마의 바람”이 원전의 북서쪽에 위치한 이이다테무라와 후쿠시마시를 덮쳤다. 군마 대학의 화산학자인 하야카와 유키오씨는 이렇게 말했다. “방사성 물질은 높이 수십 미터의 바람을 타고 지표를 핥듯이 이동했다. 분지와 산맥 등 지형의 기복을 감지하여 분포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이다테무라가 심각한 오염에 봉착한것은 같은 3월 15일 18시이다. 그날 저녁이 되어 후쿠시마 원전에 불어 오는 바람이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후쿠시마현에게 악마의 바람이 되었다. 특별히 진한 방사능 구름이 출현하여 19시 후쿠시마시 20시 반에 고리야마에 도달했다. …이 방사능 구름은 시라카와의 산맥을 넘어 토치기현에 침입하여 나스 마을과 닛코시에 도달 하였다.”( 「주간 금요일”2011년 7월 8일호 22 페이지). ” 이때 군마 · 토치기 양현의 북부에 비가 내렸기때문에 방사선 물질이 침착된 핫스팟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방사성 세슘의 입경(粒径)은 극히 작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 떨어지지 않고 비가 오지 않는 때에는 거의 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일본 경제신문」2011년 7월 25일). 

3월21일 3호기의 위기- 새로운 대량방출

3월 21일 오전이 되면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되어, 후쿠시마 제 1의 풍하 지역 (후쿠시마 제 2원전 · 북 이바라키시 · 다카하기시 · 미토시)에서 공간 방사선량은 몇 배로 뛰었다. 이 같은 이상 사태가 왜 일어 났는가. 원자력 전문가 다나베 후미야씨에 따르면 이 시간에 MOX 연료를 사용한 3호기 압력 용기의 압력이 보통의 110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지나친 고압으로 인해 냉각수를 외부에서 주입할 수 없는 사태가 되어 용융물의 덩어리가 다시 녹아 수증기 폭발을 일으켰다. 따라서 뜨거운 용융물의 질량이 압력 용기를 뚫고 격납 용기에 떨어졌다. 그 충격을 받아, 일부 방사능은 원자로 밖으로 방출되어 풍하의 후쿠시마현 내부로부터 북 이바라키일대를 오염시켰다는 것이 다나베 후미야씨의 견해이다 ( 「아사히 신문」2011년 8월 8일자). 

3월 23일이 되면 새로운 플룸이 형성되어 「이바라키 해안에서 치바를 통과하여 남하. 관동 지방의 많은 곳에서는 이때 연일 비가 내렸고, 각지에서 방사성 물질이 지표에 침착했다 “(“아사히 신문 “2011년 8월 11일자). 

방사능 오염 – 핫스팟의 형성

4월에 들어가면, 문부과학성 및 미국 에너지부와 공동으로 150-700미터 상공에서 토양의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는 대규모 조사를 통해 상세한 오염지도를 작성했다. 반감기 30 년의 세슘 137의 축적 농도가 1평방 미터당 60만 베크렐 이상이라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시 강제 이주의 대상이 된 지역의 오염 수준에 해당하지만, 조사 결과, 이런 종류의 오염 지역은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800평방 킬로미터(8만 헥타르)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주민의 피난 탈출을 재촉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극히 소극적으로 밖에 보도되지 않았다). 면적은 도쿄도 면적의 40%, 비와호의 약 1.2 배에 해당하며, 체르노빌 사고 당시 강제 이주 지역 전체의 대략 10% 규모가 된다. ( 「아사히 신문」5월 11일자). 

문부 과학성은 제 1원전에서 20킬로미터 이내의 ‘경계 지역’내의 50개 지점에서 연간 예상 선량을 측정한 결과를 8월 19일에 공표했다. 그에 따르면, 50개 지점 중 35개 지점에서 1년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사선량이 20밀리 시버트를 초과했다. 연간 예상 선량 20밀리 시버트라는 것은 ‘계획적 피난 구역’지정의 기준이 되는 수준이다. 

첫 원전이 있는 오쿠마정에서는 총 12개 지점이 20밀리 시버트를 초과, 그 중 7개 지점에서 100밀리 시버트를 초과했다. 가장 높은 선량을 기록한 것은 원전의 남서 3킬로미터에 있는 오쿠마정 코이리노에서 508밀리 시버트였다. 이 피폭선량은 일반인의 인구 방사선 허용 한도인 연간 1밀리 시버트의 500년분이 된다 ( 「아사히 신문」2011년 8월 20일자 석간). 오염 지역 중에서도 국소적으로 심하게 오염된 지역은 “핫스팟”이라고하지만 원전에서 20킬로미터 거리에서는 거의 전역이 핫스팟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베대학 해사과학 연구과교수 야마우치 토모야씨는 6월 하순에 후쿠시마 시내 4곳에서 토양 오염도 조사를 실시하고 1킬로그램당 1.6만 ~ 4 · 6만 베크렐의 방사선량 을 발견했다. 원전에서 62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29만명의 후쿠시마시에서도 곳곳에서 “핫스팟”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3천만명의 인구가 살고있는 수도권에서도 곳곳에서 ‘핫스팟’이 발견되었다. 치바현 카시와시라고 하면 도쿄의 베드 타운. 후쿠시마 원전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이지만, JR 카시와역에서 도보 2분의 고급 주택지 길가의 토양에서 후쿠시마시를 웃도는 5.3만 베크렐의 방사선량이 검출되었다. 체르노빌이라면 강제피난구역으로 지정되는 수치이다. ( 「주간 현대 “2011년 8월 6일 호, 64 ~ 65 페이지, 동 7월 30일 호에서”유럽 방사선 리스크위원회 ‘(ECCR)의 과학 위원회 수석으로 영국 우루스타대학 객원교수인 크리스 버스비 박사와의 인터뷰 기사 참조). 

6월 10일이 되면 원전에서 370킬로미터 떨어진 시즈오카현 최대의 차산지에서 수확한 찻잎의 오염이 확인되어 시즈오카 차의 출하가 중단되었다. 원전에서 북쪽으로 170킬로미터 떨어진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의 목초에서 잠정 허용치를 3배 초과하는 세슘이 검출됐다.  7월에 들어서 육류 가축의 사료인 볏짚의 광범위한 오염이 밝혀졌고, 7월 25일에는 후쿠시마산 밀과 유채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되었다. ( 「마이니치 신문」2011년 7월 26일자). 벼농사로의 오염의 확대가 우려된다. 

방출된 방사능은 수월하게 국경을 넘어 세계를 돌아 다녔다.  3월 12-16일 사이에 방출 된 방사성 물질은 저기압에 동반된 상승 기류로 휘감아 올라가, 제트 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하루 3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했다.  3월 18일에는 미국에 도달하였고 서해안 일대에서 맹독의 플루토늄이 관측되었다.(앞의 크리스 버스비 박사와의 노리마츠 사토코 씨의 인터뷰 기사 ” 미국까지 확산된 플루토늄」 「주간 금요일”2011년 7월 8일호 24-25 페이지). 후쿠시마에서 핵 재앙은 세계의 핵 참사로 퍼진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방출량

폭발한 원자로 건물의 옥상은 푸른 하늘이며(폭발로 건물옥상이 날아가 버린 것을 말함), 방사능의 방출은 멈추지 않았다. 3월 15일에 시간당 200tb (테라베크벨 = 1조 베크렐)이라는 최고 수준의 방출을 기록했지만, 3월 21일 위기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5월의 평균 방출량은 시간당 0.002tb (20억 베크렐), 6월 평균 시간당 0.001tb (10억 베크렐)로 떨어졌다. 6월에는 3월 15일 당시의 20만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 「아사히 신문」2011년 7월 29일). 

하지만 강렬한 여진이 일어나면, 반파 상태의 원자로 균열이 확대될 것이고, 파이프 라인 및 지하 건물이 손상되면 방출량은 한꺼번에 늘어날 것이다. 7월 1일에는 리히터 규모 6.4,  8월 12일에는 리히터 규모 6.0의 여진이 후쿠시마현 하마도리를 덮쳤다. 거의 같은시기에 원전 부지내의 균열된 지면으로부터 방사능을 띤 증기가 분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히로시마 시립대학의 로버트 제이콥스교수는 여진의 충격이 원자로의 균열을 진행시켜 증기 분출을 초래한 것으로 추측하고 강렬한 여진이 계속되면 원자로는 스스로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3월 11일 이후 후쿠시마 제 1원전에서 대기중에 어느 정도의 양의 방사능이 방출된 것인가. 4월 단계에서 도쿄 전력과 정부는 대기에 총 방출량을 37만 tb인것으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6월 6일 기자 회견장에서 77만 tb로 크게 상향조정했다. 

물 (냉각수 · 지하수 · 해양)에 대한 방사능의 방출에 대해서는 어떨까. 1-4호기의 원자로 건물과 터빈 건물 등에 쌓여있는 오염수 총량은 7월 20일 현재 약 9만 5천 톤. 건물에서 집중 폐기물 처리 시설로 옮겨진 약 2만 2천톤을 추가하면 총 11만 7천 톤의 오염된 물이 원전에 쌓여있다 ( 「아사히 신문」2011년 7월 21일).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능의 총량은 80만 tb 정도라고 도쿄 전력은 추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큰 착오가 없다고 하면 대기중에 방출된 방사능과 거의 같은 양의 방사능이 냉각수 등으로 융화되어 대량의 오염된 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와 해양오염

같은 방사능의 방출이라고 해도, 대기중에 방출하는 경우와 냉각수로 방출했을 경우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기중에 방출된 77만tb의 방사능인 경우 즉시 원전 부지밖으로 확산하여 원전 외부의 환경을 직접 오염시키는 역할을 한다. 

냉각수로 방출된 80만 tb 방사능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11.7만톤의 오염된 물중 원전 부지 외의 해양 등에 유출된 것은 520톤, 방사능량으로 하면 4720tb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이것은 거짓이 없다고 하면, 오염수의 99.6%, 오염수 내의 방사능 총량의 99.4 %는 원전 부지 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금은 원전 외부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작용은 크게 없다고 생각되고 있다. ( 「아사히 신문」2011년 7월 10일자).(역자주 : 진실이 드러난 지금은 도쿄전력의 이런 발표가 완전히 거짓임이 드러났고, 해양오염도 대기중에 방출된 오염만큼이나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데이터를 근거로 해양의 방사능 오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우선 4720tb이라는 방사능량 자체가 환경 기준에 비추어 비정상적인 높은 수준임을 지목하고 싶다. 후쿠시마 제 1 원전에 허용되는 해양의 방사능 방출 한도는 연간 0.24tb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출한도의 2만배에 달하는 오염된 물이 4개월 동안 바다로 방류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의 추정 숫자는 대기와 토양에 방출된 오염물질의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대기중에 방출된 방사능의 대부분은 조만간 결국은 지상에 강하하고 대지와 해양에 흡수되어 간다. 일본의 대지에 부착된 방사능도 결국은 비에 씻겨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 든다. 장기적인 시야에 서서 생각하면, 대기로 방출된 방사능의 대부분은 궁극적으로 해양에 흡수되어 가는 운명에 있는 것이다. 많은 루트를 따라 바다의 방사능 오염이 심해져 방사능의 생물 농축을 가속화시키고 먹이 사슬 측면에서 상위에 있는 대형 어류나 인체에 농축되어 가는 것은 피할수 없다.(나카치 시게하루 ‘수산물의 오염도를 해독하다’ 「주간 금요일 “2011년 7월 29일, 18 페이지). 

히로시마 원폭투하와 비교하면

후쿠시마 원전 4기의 원자로와 핵연료 저장풀에서 원전 부지 밖으로 방출된 77.5 만 tb의 방사능량, 원전의 오염수에 포함된 80만 tb를 합산하면 방사능의 방출 총량은 157만 tb에 도달하게 된다. 후쿠시마의 방출량을 핵무기의 폭발과 원전 사고로 방출된 과거의 사례와 비교하여 보자. 

우선 1945년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형 원자폭탄의 경우 실제로 핵분열한 우라늄 235는 10-1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산한 것으로 끝나, 방사능 방출량은 1.3만 tb에 그쳤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을 이용한 내파형 원폭의 경우에는 플루토늄 연료의 15-25%가 핵분열을 일으키기때문에 방출량은 2.0만tb가 되었다. 현대형 핵무기의 경우 핵분열 물질의 한가운데에 구멍을 설치해 부스터라고 불리는 소량의 핵융합 물질 (트리튬 등)을 봉입하여 핵분열 물질의 100% 폭발을 실현하고 핵폭탄의 소형화와 고성능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히로시마형 원폭은 “장난감”과 같은 핵폭탄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백만 킬로와트급의 평균 원자로는 하루 가동하면 3발의 히로시마형 원폭을 폭발시킨 것과 같은 정도의 “죽음의 재”(사용후 핵연료)을 만들어 낸다. 일년 가동하면 1000발의 히로시마형 원폭을 폭발시킨 것과 동등한 ‘죽음의 재’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오늘의 원자로라는 것은 매일 히로시마형 원폭 3발을 폭발시킨 것과 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물을 끓여 거대한 발전용 모터를 돌려왔던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원전 부지 밖으로 방출한 방사능량은 77.5만 tb라고 하기 때문에, 히로시마형 원폭의 60개, 나가사키형 원폭이라면 39개를 폭발시킨것과 동일한 양의 방사능을 방출한 것이 된다. (역자주 : 이런 셈법도 후쿠시마 상황이 진행형인 관계로 더 이상 맞지않게 되었다.)

세슘 137은 반감기가 30년으로 길고 식품과 토양에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는 성가신 방사성 물질이다. 이 세슘 137만을 비교 대상으로 하면 후쿠시마로부터의 방출분은 1.5 만 tb이며, 히로시마 원폭 168개분의 방출량에 해당하는 추정치를 정부가 발표했다 ( 「일본 경제신문」2011년 8월 27일자). 

원전문제 전문가로 도쿄대학 첨단과학 기술센터 부설의 동위원소센터 교수의 코다마 타츠히코씨도 2011년 7월 27일의 중의원 후생 노동위원회 의 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했다. “저희 동위원소 센터 … 지식을 바탕으로 계산하여 보면, 후쿠시마의 원자로에서] 우선 열량의 계산은 히로시마 원폭의 29.6 개분에 상당하는 양이 누출었습니다. … 더 무서운 것은 … 원폭에 의한 방사선의 잔존량과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잔존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일년이 지나면 원폭이 1000분의 1정도로 감소하는 반면 원전에서의 방사선 오염 물질은 10분의 1정도 밖에 저하되지 않습니다. 즉 이번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는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수십개분의 원폭에 상당하는 방사능과 원폭 오염보다 훨씬 다량의 잔존물을 방출했다. ” 후쿠시마는 수십발의 히로시마형 원폭에 해당하는 방사능이 방출되었을뿐만 아니라 방사능이 줄어드는 템포는 백배나 천천히 이루어 진다고 코다마 교수는 증언한 셈이다. 

히로시마에 비해 후쿠시마는 왜 방사능이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인가. 원자로 가운데는 반감기가 긴 방사성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감기가 긴 것은 단위 시간당 방사선량은 낮기 때문에 급성 증상은 나오기 어렵지만, 저레벨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시키게된다.  특히 원전으로부터 방출된 방사능을 호흡과 음식을 통해서 체내로 받아들이는 경우, 저레벨의 내부피폭에 만성적으로 노출된다. 그 결과, 일정한 확률로 빠르면 5년후, 늦어도 10 ~ 30년후에 암이 발병하고, 몸의 컨디션에 이변을 가져오게 된다.
 
스리마일섬-대기권내 핵실험과의 비교
 
다음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 해리스버그 교외의 스리마일섬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와 비교하여 보자. 스리마일섬의 경우 방사성 물질의 방출량은 9.1 만 tb에 불과했다. 이미 후쿠시마에서는 스리마일섬 사고의 17.3배의 방사능이 원자로 밖으로,  8.6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원전부지 밖으로 방출된 셈이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 35년 동안 미국 · 소련 · 영국 · 프랑스 · 중국이 실시한 대기권 내 핵실험시의 방사능량과 비교하여 보자. 대기권내 핵실험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방출 사건이었다. 특히 1950년 – 63년 동안 미국과 소련이 비키니 환초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을 거점으로 거대한 수소폭탄 실험을 경쟁하던 시기였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도 방사능 오염의 손톱자국을 남기고 있다 .  543회에 걸쳐 진행된 대기권내 핵실험 속에서 체르노빌 사고의 580배에 해당하는 30억 tb의 방사능이 방출되었다. ( “핵무기 · 핵실험 모니터”373-4 호, 2011년 4월 15일). 후쿠시마에 있어서 원자로 밖으로의 방출과 비교하면 1900배 규모다. 최근 암이 발병하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이 시기의 핵 실험이 그 한가지 원인이라고 생각될수 없는 것일까. 대기권내 핵실험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우리가 고통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체르노빌 참사와 비교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의 경우 하나의 원자로(4호기)만 붕괴를 일으켜 200톤에 달하는 방사성 우라늄과 방사성 흑연 중 상당한 부분이 날아가 버렸고, 520만 tb의 방사능을 대기 등으로 방출하였다. (그러나 냉각수의 방출은 소규모에 불과했다). 방사능을 띤 거대한 플룸이 형성되었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에서 북유럽 국가들까지 흘러갔다. 

체르노빌의 방출 방사능량을 후쿠시마의 사례와 비교하여 보자. 대상을 대기로의 방출로 좁히면, 체르노빌 방출량은 후쿠시마의 6.7배가 된다. 오염수로의 누출분까지 포함하면 후쿠시마의 3.3배 규모다. 즉, 대기 · 물로의 방출규모 전체를 지표로 하면 후쿠시마의 방출량은 이미 체르노빌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것이 된다. (역자주 : 이것도 후쿠시마 상황이 현재진형형인 이상, 이미 철지난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미 체르노빌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인 것이다.)

체르노빌에서는 피난민이 40만명을 넘어서, 2천개 이상의 마을이 폐촌이 되었다. 25년이 지난 오늘에도 출입금지 지역이 넓어지고, 경제 활동은 거지반 마비된 상태이다. 

체르노빌 핵참사는 주변 주민의 건강에 어떤 피해를 줬는가. 사고 당시 소련 정부의 고문을 맡은 야부로코푸씨 등의 편집하에, 러시아어 등 5천개 이상의 문헌 · 논문을 검토한 획기적인 책이 2009년에 영어로 출판되었다. Chernobyl Consequences of theCatastrophe for People and the Environment  가 그 것이다 (호시카와 쥰씨들의 그룹이 번역중이라고 한다). 이 책은 사쿠마 토모코씨가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하, 그것을 추려 기록해 둔다. 핵 참사의 직접 · 간접의 영향으로 사망 한 사람은 “2004년까지 985,000 명에 이른다. 이 인원은 국제 원자력기구 (IAEA)의 추정치와는 두자릿수나 다르다. ··· 벨로루시에서는 사고 전년에는 90%의 어린이가 건강했었지만, 2000년에는 그 비율이 20% 이하로 격감하고 있으며, 1986 – 1994년의 신생아 사망률은 9.5%에 달하고 있었다. 또한 1993년의 조사에서는 세슘 137의 오염 수준이 높았던 2지역에서는 사고 당시 0-4 살 아이들 중 건강한 것은 불과 9.5%에 불과했다. “위 2지역의 오염 수준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북서쪽으로 50킬로미터 부근까지의 오염 수준에 상당한다고 사쿠마씨는 말하고 있다 (「사쿠마 토모코의 마음껏 수다떨기」 「오르타」429 호, 2011년 8월 38 페이지). 

우크라이나 공화국측의 주민의 건강피해는 어떠했는가? 사진작가인 히로카와 류이치씨는 사고에서 25년째인 2011년 2월에 우크라이나를 다시 방문하였고 사건 당시 같은 공화국의 보건 장관이었던 로마 넨코 · 에후모비치씨와 만났다. 히로카와씨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로마넨코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5.3만 ㎢의 오염 지역은 그대로입니다. 이재민은 255만명, 그 중 50만명은 어린이였습니다. ··· 우크라이나 국민 2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한 연구를 한 결과 .. · 그리 높은 방사선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병이 있었습니다 ··· 조사된 사람들의 68%는 원전 사고 이전에는 대부분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범주의 사람들 중 건강한 사람은 6% 밖에 없습니다. 특히 종양 질환의 증가”가 눈에 띄고 있다고 한다.(히로카와 류이치 「체르노빌의 수수께끼의 비」 「DAYS JAPAN」2011년 9월호, 43 페이지). 

후쿠시마 제1원전에 잠들어 있는 방사성 물질의 총량 

후쿠시마에는 어느 정도의 양의 방사성 물질(핵연료)이 저장되어 있었는가. 체르노빌의 경우, 폭발 사고를 일으킨 원자로는 4호기 뿐이며, 원자로 내의 핵연료는 200톤이었다. 이에 대해 후쿠시마의 경우 6개의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저장풀 속에 체르노빌의 10배인 2천톤의 핵연료가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앞의 ECCR 과학위원회 수석 크리스 버스비 박사의 추정 “주간 금요일”2011년 7월 8일호 25 페이지). 

방사능 레벨로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후쿠시마의 2천톤의 핵연료 가운데에는 7억 2000 만 tb의 방사능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 원전으로부터의 방출량의 138배, 대기권내 핵폭발의 방출량의 24%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축적되어 있던 것이다. 

현재는 저장 핵연료의 방사능 총량의 0.2%가 원자로밖의 대기와 냉각수로 방출된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방사능 방출규모는 체르노빌의 3분의 1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향후 새로운 여진이 강타하거나 테러리스트를 포함한 군사 공격이 일어나고, 인위적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여, 후쿠시마 제 1 원자로의 자괴(自壊) 과정이 진행되어 저장량의 1%가 방출되는 사태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만으로도, 방출 규모는 720만tb가 되어, 체르노빌 (520만 tb)을 웃도는 사상 최악의 사고로 발전하는 것은 틀림없다 ( 「아사히 신문」2011년 6월 11일자). 

절반이 용융한 2000톤의 핵연료를 어떻게 할것인가
 
후쿠시마의 각 원자로의 바닥에는 총 2000톤 무게의 핵연료로 구성된 ‘요룡(妖龍)’이 반쯤 용융된 모습으로 똬리를 틀고있다. 이 요룡을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대량의 냉각수를 계속 주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선한 물의 대량주입을 불요(不要)로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순환 주수 냉각’시스템이다. 이것을 잘 사용하여 오염수의 제독을 실시하고, 원자로의 냉각을 위해 재이용하기 위해 프랑스 아레바제 장비, 미국의 큐리온제 장비 이외에 8월 16일에는 도시바 방사성 세슘 흡착장치 ‘샐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본격 가동한 6월 17일부터 8월 9일까지의 누적 가동율을 계산하면 66%에 불과하다. 8월 9일까지 처리할수있는 고농도 오염수의 합계는 4만 2천톤에 불과해 12만톤이 또한 터빈건물 지하 등에 남아있다 ( 「일본 경제신문」2011년 8월 17일 첨부). 

오염수를 효율적으로 제염하기 위해서는 약으로 침전시킨 뒤, 남는 방사성 물질은 흡착제로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방사성 물질의 침전물에 포함 된 방사능 농도는 기존의 고농도 오염수의 백배 이상이며, 원격조작을 사용하지 않으면 취급할수없는 물건이라 한다. ( 「아사히 신문」2011년 6월 10일자). 

다행히 심한 여진도, 군사 공격도 없었고 ‘순환주수냉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오염수 전체 순환이 달성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히 오염수가 무한정 늘어나는 악몽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오염 제거의 산물로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 매일 대량으로 생성될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시바의 ‘샐리’의 경우 방사성 세슘을 흡착하는 성질이 있는 제올라이트(비석)을 채운 탑에 오염수를 흐르게 하여 방사능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 “적기”2011 년 8월 24일자) 그 결과 방사능 투성이의 위험한 제올라이트 (비석)가 매일 대량으로 나오는 것이다. 

재해을 당한 3곳의 현(県)만으로 재해 폐기물의 파편량은 2263만톤에 이른다. 안에는 대량의 방사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생활 쓰레기와 하수 슬러지의 소각재에서 대량의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다. 이들을 분별하여 보관할뿐만 아니라 향후 대량으로 생겨난 비석을 어떻게 보관해 나가면 좋을것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체중 2000톤이라는 거대한 요룡(妖龍)을 어떻게 부피를 줄이고 작게하여 최종적으로는 소멸시켜 나가면 좋을지 하는 큰 문제가 있다. 대량의 주수(注水)를 계속하여 요룡의 박피를 한장씩 벗겨 나가는것 같이, 방사성 물질을 물속에 용해시키고, 불석에 흡수시키는 수밖에 방안은 없는것인가. 그렇다면 요룡을 소멸시키기까지 어느 정도의 오염수를 정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농축된 방사성 폐기물과 비석은 얼마만한 분량이 될 것인가. 그 저장과 관리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이 드는가. 확실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5년 이후에 주민의 건강에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후쿠시마의 경우 7월 27일 총무성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진 전인 2010년 10월 시점에서의 현 거주자 수는 203만명이었지만 원전과 지진 재해의 영향을 받아 현 밖으로 피난한 수는 4만 6천여명이라고 한다. ( 「DAYS JAPAN」2011년 9월호, 18 페이지). 현내 피난을 포함하면 피난민의 수는 증가하겠지만, 지금은 체르노빌의 10 %수준이다. 후쿠시마는 히로시마형이 아닌 장기간 대지와 해양이 오염되고 계속 인체가 낮은 양의 내부 피폭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체르노빌형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본고(本稿)에서 여러번 언급한 ‘유럽 방사선 리스크 위원회'(ECCR) 과학위원회 수석 크리스 버스비씨가 후쿠시마 사고 3주 후에 쓴 논문 「후쿠시마의 비극적인 사고의 건강 영향」의 「결론 권고」의 제 1항목 및 제 5항목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ECRR 위험모델에 의해 후쿠시마 사고 100킬로미터 거리의 주민 300만명에 대한 건강 영향을 검토했다. 100킬로미터 거리에 한해 거주를 계속하여 향후 10년간 10만명, 50년간 약 20 만명이 암을 초과 발병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즉시 대피하면 이 숫자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100킬로미터권과 200킬로미터권 사이에 거주하는 700만명에서 향후 10년간 10만명, 50 년간 22만명이 초과 발암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러한 전망치는 ECRR 위험모델 및 체르노빌 사고 후 스웨덴에서의 발암 위험성에 관한 역학 조사에 기초하여 산정된 것이다. … 

5. 100킬로미터권의 북서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즉시 대피하고 그 지역을 출입 금지해야 한다 (마츠 치유키 감역 스즈키 히로코 ·노리마츠 사토코 역, Peace Philosophy Centre의 HP인용).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시 2살이었던 사사키씨가 백혈병이 발병한 것은 피폭에서 9년이 지난 1954년의 일이었고, 체르노빌에서도, 아이들 사이에서 갑상선 암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사고 5년 후였다. 5년 후인 2016년 이후 후쿠시마 주민의 건강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는지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환자가 급증하지 않는지 여부를 세상은 주시하고 있다. 

맺음말
 

36억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원시 생명체의 공동 작업 덕분에 오존층과 대기층이 형성되어 지구 생명권을 지탱하는 풍요의 땅과 바다가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핵의 시대 ‘는 갑자기 ‘천상의 불 = 핵 천룡’이 지구 생명권에 억지로 강하하여 暴龍(원폭) 또는 妖龍(원전)이라는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똬리를 트는 시대가 되었다. 

대지의 어머니를 “여신”으로 그려온 화가 오다 · 마유미씨에게 미국에서 신세를 졌지만, 그녀가 그린 쌍두용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내걸고 싶다. 원전 추진 세력은 머리 두개 달린 부분만 시야를 한정하고 ‘평화를 위한 아톰’과 ‘전쟁을 위한 아톰’과는 구별할수 있고, 분리할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쌍두의 용을 두개의 용으로 잘라내고, 분리하는 것 등은 자본주의의 가혹한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평화적인 원자와 호전적인 원자를 장기간 분리해 놓는것은, 우리는, 너무 국가 감정이  강하여, 강렬한 공격성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평화적 목적의 원자만을 끌어안으면서 전쟁 목적의 원자를 미워하는 등의 일은 할수없습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둘 다를 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프랑스의 해양학자이자 모험가이기도 한 자크이브 쿠스토가 1976년 5월 유엔 회의에서 연설했던 대로이다. 

하나 더, 지진 상습 지대에서의 원전 건설의 위험성이 자주 지적되지만, 전쟁 상습 지역에서의 원전 건설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직시하고 경종을 울렸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원전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모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평화 노망 이용’에 불과했다. 일미 안보 체제하에서 일본 전토를 미군 기지로 개방하고, 미군의 우주 규모의 신형 전쟁 계획을 위한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유지하면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초낙관적인 ‘가정’에 기초하여 저렴한 원전 건설에 매진해 왔다. (타나카 토시유키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히로시마 – 선전 공작의 타겟이 된 피폭자들」「세계」2011년 8월호 ). 그것은 왜인가?  ‘평화 노망’(평화로워 정신을 놓고있는 모양)인척하고 있는 것이 원전 발전비용을 낮출수 있고, 돈벌이를 증가시킬수 있으며, 정치 헌금이라는 이름의 뇌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 휴전 상태에있는 한국 전쟁이 재개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원전에대한 무력 공격은 군사력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해안에 늘어선 원전은 가상의 적이 방아쇠를 잡고있는 핵무기인 것입니다 … 일단 원전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일본의 토지는 영원히 사람이 살 수없는 땅이 됩니다”라고 원전 기술자였던 오구라 시로씨가 명확히 말씀하셨던 대로 “원전을 늘어놓고 자위 전쟁은 할수없다”는 것이다 (오구라 시로 “원전을 늘어놓고 자위 전쟁은 할수없다」 「계간 리뿌레자 “3 호, 2007년 여름). 여기에 깊은 진실이 있다. 한국 전쟁이 재개되면 벌거숭이 상황에 있는 후쿠시마는 제일 좋은 표적이 되는 것은 필연이고, 이런 벌거숭이 상황은 향후 수십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의지 여하에따라 쉽게 실현할수 있는 과제가 하나 있다. 한국 전쟁을 종결시키고, 동아시아 지역을 전쟁 금지 지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포스트 3 · 11의 일본 최대의 외교 과제가 되어 왔고, 만약 실현될 수 있으면 일미 안보체제가 신통력을 잃어가게 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출신의 타카하시 테츠야씨는 “전쟁전 일본의 정치 체제의 핵심이 천황제 군국주의에 있었다고 하면 미일 안보 원전주의야말로 전후 일본의 정치 지배 체제의 핵심이 아니었나”라고 문제 제기하고 있다 ( 「마이니치 신문」2011년 6월 17일자). 실로 날카로운 파악이다. 일미 안보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원전형 공공사업 체제 – 원가 비용에 일정 비율의 이윤을 더해 고가의 전력 가격을 시장에 떠넘기는 것을 전력 회사에 허락한 체제로,  자민당 · 민주당이 행해왔던 정치 자금 우려내기의 기반이 되었다. 

현재의 원전을 둘러싼 위기는 미일 안보가 아니라 한국 전쟁의 종결과 부전(不戦)지대 설정이야말로 일본의 평화 보장의 관건이 되고 있음을 밝혔지만, 그 외에도 원전에의해 지탱되어온 전력 회사의 뇌물 정치의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전통적인 정치 지배 구조를 해체할수 있다.  ‘미 핵 군사동맹’에서의 이탈과 ‘원전에서 철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면 전후 일본의 지배 체제의 중추는 녹아버릴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섬뜩한 여진이 빈발하고 있다. 7.2억 tb의 방사능을 띤 체중 2천톤의 妖龍이 후쿠시마 땅에서 똬리를 틀고서 뒹굴고 있다. 천계에서 내려온 이 요룡을 폭발하지 않도록 감시하면서 어떻게 지구 생명권에서 천계(또는 지구 심부인 명계)에 몰아가면 좋을까. 향후 수십년은 이 난제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구약 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호와 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대답하여 말씀 하셨다. 이것은 누구인가. 지식도 없으면서 말을 거듭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어둡게하는 것은. … 너는 평생에 한번이라도 아침에 명령하며 새벽에 지시한 적이 있느냐 “( 「욥기」38 장, Pearl S.Buck, Command the Morning 1959;국역’펄벅’’하나님의 불을 제어하라’ 2007년 코미치 책방). 이 물음을 십자가로 짊어지고 우리는 살 길을 모색해 나가야한다. 

                                              후지오카 아츠시.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보론
 
노리마츠 사토코
 
2011년 3월11일 지진 해일에 의한 재앙과 그에 따른 원전 사고는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사건이었다. 아니,아직 너무 과거형으론 할수없다.  처음24시간 동안은 연락을 받지 못했던 센다이의 가족을 생각하니, 미칠것만 같았고, 가족의 무사가 확인된 후에는 전대 미문의 핵참사가 TV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을 절망감을 가지고 보았다. 여기 밴쿠버의 정신과로부터도 들었지만, 해외에 있는 일본인들은 떨어져있는 만큼 걱정도 증가하는것 같다. 또한 일본 TV를 계약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해외 언론이 반복하여 보여주는 비참한 해일과 원자로 폭발 영상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 상태가 되어,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도 많다. 

아시아계 이민이 많은 캐나다 밴쿠버 땅에서 나는 역사인식 문제, 핵 문제,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평화 교육 단체 ‘피스 철학센터’를 운영해 왔다. 반핵 운동에 참가하고,피폭지에서 캐나다 학생들을 안내해온 활동가로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어 이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에 세번째 핵의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에,나는 사로잡혀 있었다. 

날이 갈수록 일본 정부와 언론이 원전 사고의 심각성과 방사선의 위험에 대한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거나 하는 것이 영어와 일본어 양쪽에서 정보를 쫓고있는 나에게는 손금을 보듯 훤하게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원자로의 폭발이나 화재의 경우도” 폭발음 “또는 “연기가 보였다”라고 완곡한 표현 밖에 쓰지 않았다. 특히 3 호기의 폭발 은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날아 히로시마의 버섯 구름을 연상시키는 듯한 무서움이었지만,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폭발의 사진은 보도해도 동영상은 방영하지 않았다 . ‘노심 용융’이나’재임계’라는 말이 금기시되어 있거나 체르노빌 사고와의 비교조차 금제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3호기에서 플루토늄을 포함한MOX 연료가 사용되는 것은 일본의 미디어 보도에서는 거의 감지할수 없었다. 또한”외국만이 소란피우고 있다”는 정보가 일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도 있고, 해외의 일본인이 일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주의를 호소해도”해외는 과장이 심하다”라고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일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보내려고, 일본어 영어 모두에서 블로그, 페이스 북, 트위터를 통해 원전 문제의 발신을 시작했다. 해외 전문가의 논문의 번역 소개,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는 오염 상황에 대한 분석, 보도와 정부 발표의 거짓말을 지적한 기사,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전문가로부터 기고받은 기사가 많은 독자를 모으게 되어,Peace Philosophy Centre 블로그는3-5월은 1일 1만,월간 30만 액세스를 얻게 되었다. 반대로,식품오염이나 후쿠시마의 아이들이 고오염 지역에 방치돼 왔던 “어린이 20밀리 시버트 ‘문제 등 일본에 불리한 정보는 반대로 해외에 좀처럼 보도되지 않거나 했기 때문에,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를 통해 영어의 발신도 해왔다. 내 사이트가 의지라고 말해주는 목소리도 다수 전해지게 되어, 거의24시간 정보를 계속 쫓아다녔다. 

지진 재해로부터4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정보 은폐와 조작은 계속된다. “풍문 피해”라는 외국어로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기이한 개념을 가지고 원전 피해를 거짓으로 꾸며,소비자측에 책임 전가하는 논법은 일본에서는 버젓이 통용되는것 같지만,해외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5월 한중일 정상 회의에서는 후쿠시마에서 정상들이 벚나무 열매(버찌)를 함께 먹는 등 해외의 사람이 보면 눈을 까뒤집을것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공동 문서는 “풍문 피해 방지에 일치”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와 놀랐다. 실제 문서를 보면,”풍문 피해”등이라고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반대로 일본은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도록 한중에서 못 박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일본을 응원하러 외국 정상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원전 사고에 대한 책임을 선반에 올려,일본 상품을 팔 생각밖에 머리에 없는 일본 중심주의에 질려버렸다. 또한 일본의 국경내에서의 오염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러시아, 한국,중국, 태평양 등 이웃 나라에 얼마나 오염이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원전 사고 직후 태평양쪽으로 바람이 불어 일본 사람은 ‘신풍(神風)’이 불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신풍’이라도,괌과 하와이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바람’이었다. 방사성 물질은 제트기류를 타고 며칠만에 북미 대륙에 상륙 하였고 2주일도 걸리지 않아 북반구를 일주했다. 방사능 재해에 국경은 없다. 

인터넷 덕분에 이렇게 해외에 있는 일본인이라도 정보발신을 할수있다. “안전한 장소에서 제멋대로 말하고 있다”라고 말할때도 있지만, 상술한 것처럼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해외는 안전하지 않으며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할수있는 것을 할수밖에 없다. 

정부는 4월에는 통신 회사에 대해 ” 인터넷 유언 비어 ‘에 대해서는”적절한 대응”을 취하도록 하는 요청을 내고 6월에는 블로그나 트위터에 “잘못된 정보”를 감시하는 업무 의 입찰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부정확”한 정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떤 매체에도 적용된다. 감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정부와 대형 미디어 자신이 발하는 정보이다. 이4개월동안, 정부와 대형 미디어가 숨겨 왔던, 조작해 왔던,부정확하게 전달해 왔던 정보를 해독하여, ‘대본영 발표’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정보를 전해왔던 수만의 블로그나 트위터의 사회 공헌은 헤아릴 수 없다. 이 원전 사고 이후 일본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존권, 행복권,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는 전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력 회사를 스폰서로 가지지 않고,정부의 압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터넷 매체를 대상으로 한 검열, 감시 행위를 용서하지 말라. 이러한 구시대적인 압력에 대한 국제적 감시의 눈을 강화하는 의미에서도 해외의 일본인들이 완수할 역할은 크다. 

311 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하는 일본인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무명이라도 유용한 정보를 발신하고 공유함으로써 시민의 힘은 두배로 된다. 정보 통제가 진행되는 한편, 일본에서도 이집트와 튀니지 같은 인터넷의 힘에 의한 시민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노리마츠 · 사토코 피스 철학 센터 대표 www.peacephilosophy.com 아시아 태평양 저널 재팬 포커스 편집 코디네이터 www.japanfocus.org)
 
( 「경제 과학 통신」126호, 2011년 9월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