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는 우리역사가 아니다. 이건 순 날조다.

유적상으로만 나타나는 한국문명은 암사동의 신석기취락이 곧 자생적으로 한성백제로 발전, 독자적인 한강문명이 성립했다는 것이다.

야 등신들아. 니들 코밑을 좀 쳐다보라고. 암사동옆에 예로부터 사람많이 사는 동네라고 이름도 천호동, 천호동옆에 뭐 있는데, 풍납이잖아. 이 것들아.

게다가 한반도 최대 마을 유적, 최소 청동기부터 시작에 지석묘, 고인돌 다수 보유한 취락은 또한 한강가인 춘천에 있다고, 그러므로 천호동~암사동~춘천일대의 취락이 후일 몽촌, 풍납토성으로 보이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방계남하설 이 거는 인류학이라는 선사시대의 것으로 넘겨버릴 것으로 역사시대인 문명성립이후 역사인 고구려와 백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전혀 옳지않다.
이 것은 단지, 한국인의 인류학적인 교집합이 인구인동경로상 만주를 거쳐서 남하한 인종이라는 것으로 인류학에는 인종이라는 표현을 쓰지, 민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즉 백제와 고구려는 동일인종이지 동일민족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고구려가 중국지방정권이라니까 동북공정이라고 드립까는 파쇼새.끼들이 있는데, 진짜 미안한데 그거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기는 뭣해도, 첨부터 독자세력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손씨의 따까리였어요. 고구려라는 것은. 그런데, 이 공손씨가 뭐 이게 지금은 우리학계는 정작 이 쪽은 중국인이라고 해버리는데, 실은 공손씨가 모호한 정체성이거든.
삼국지를 보면 공손연이라는 놈이 황제를 참칭하기에 사마씨가 공손씨를 토벌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그 삼국지의 논조는 그저 역도토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지만, 실은 칭제는 건원이고, 건원이 칭제라고.
건원은 뿌리를 세운다는 것이니까, 칭제건원을 했다는 것은 우리는 너희랑은 틀리다고 한 거라고.
여기서 대단히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정신이 느껴지지.
그리고 훗날 고구려도 칭제건원을 한다. 우리사는 이 사실만을 전하는데….. 1호기가 아니라 2호기지.

그래서, 문제는 이게 고구려가 아니라 공손연이가 가장 먼저 지른 거잖아. 알다시피 공손연은 한반도의 백제라던가, 삼한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지.
그리고 삼국지에서 그 공손연의 나와바리를 논하는데, 그게 요동, 요서, 한사군 뭐 이래요.
여기서 한국 쓰레기 식민사학자들은 고구려와 부여가 독자세력인양 연구성과를 쳐내놨는데, 그러면 공손연세력의 영토의 상당부분을 고구려가 차지한단말야? 아니지.
게다가 공손연이 양평성에서 사마씨군을 상대로 농성하다가 성함락당하고 잡혀서 참수당하는데, 삼국사기의 기록에 동천왕이라는 고구려놈이 양평성에서 탈출하다가 자기의 아끼는 장수 둘이 위군막는다고 죽는 기록까지 있다.
그 동천왕이 공손연군에 가담했으니까, 이 거는 동천왕=공손연따까리라는 것이지. 게다가 공손연=황제이고, 동천왕은 왕이잖아. 아마 칭제쎄리고 왕타이틀하나 준거 아니면, 한제국이 주변민족들 포섭할 때 하사한 칭호를 대대로 간직한 거 같은데 여기서 동천왕은 공손연세력의 일개 지방세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동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할 때를 보자. 이게 중요한데, 우리학계 논리대로 이거는 고구려가 위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고. 바로 그 공손씨를 멸한 사마씨군대를 공격한거고, 그 사마씨군대를 이끄는 장수또한 관구검이라고 공손씨토벌에 동원된 장수와 동일인물인 위의 신하란말이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이 시점에서는 동천왕은 공손씨잔당의 지도자로써 양평성함락이후에 구공손씨영역에 통치권을 확립하려드는 위나라군대와 싸우고 있는거라고.

그러므로, 고구려라는 것은 추모에서 시작된 그거라는 것은 왕실 집안사정이고, 실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한사군이나 공손씨강역의 지방정권에 불과한 것이지만, 공손씨몰락뒤에 동천왕이라는 놈이 그 세력의 수장이 되었다는거야.
정황을 살피면, 양평성이 함락될 때, 공손연을 비롯한 모사들과 제장들은 죄다 뒤졌지. 그런데, 여기서 운좋게 탈출한 놈이 동천왕이고, 쉽게 말하면 공손씨세력의 서열 1위부터 1000위까지가 다 뒤져서, 조ㅅ만이인 부족왕의 칭호밖에 없는 동천왕이가 그거 다 주서먹었다는거라는거라고.
공손씨가 칭제를 했는데, 거기는 승상도 있고 사마도 있고 태감도 있고 대장군도 있었을거잖아. 그런데 동천왕이는 호칭이 왕인데 이게 부족장세력의 장급한테 주는 호칭이니까, 공손연정권에서 동천의 입지는 뭐 그럭저럭 상류층 뭐 그런 처지라고.
그러나 양평성의 함락으로 당시 만주에서 지도자로 추대할만한 인물들이 대거 몰락하고, 양평성에서 탈출한 동천왕에게로 정통성이 기우는, 곧 그리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

더욱이 그 공손씨를 멸망시킨 관구검이랑 맞짱 뜨는 시점에서 이거는 공손씨잔당임이 분명하지.
그리고 이 것은 고구려의 기원은 어느정도는 중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손씨가 내세운 건원이라는 것이 한국계의 건원이다 이렇게 보기는 도저히 어렵기 때문에, 그거는 상식적으로 후일의 만주족이라거나 여진, 말갈계, 아니면 만주거주의 중국계 뭐 이러한 교집합을 지닌 사람들의 중국도 한국도 아닌 별개의 역사라고 보는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인류학적인 수준에서 북방계의 남하와 역사시기의 북방계남하는 그 거는 차원이 틀리다는 것이라고.
인류학적인 수준의 이동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전세계로 퍼지는 뭐 그런 것이지만, 역사시기의 남하라는 것은 그 거는 정복인데, 예를 들어서 역사차원에서 게르만계가 서진했다고하면 그 거는 게르만인이 서로마멸망시킨 그런 차원인데, 씨.바 그게 무슨 논거인지 아냐?
역사차원에서 북방계가 남하했다는 것은 우리가 뿌리가 없다는 것이란다. 피정복당한 원시문명이라는 논거까지 된다고.
이 것은 일부 극우쪽바리들이 말하는 조선에는 본디 문명이 없던 것을 지들이 가서 세워줬다는 논거라고.
그러한 주장을 함의한 일본사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우리사학자들이 차용해서 국사랍시고 지금 써논거라니까.

그래서 갸들은 사대역사관의 기자동래설, 이 것이 무엇을 뜻하냐면 서방(=중국)의 현자가 와서 우리문명을 세웠다는 조선시대의 유교윤리에 입각한 사대사관이 동래설인데, 이 논리를 다소 차용해서 그 서방현자만 단지 부여와 고구려계로 치환한 것이단 말이다.
여기서 단군과 기자라는 것도 순 날조지. 더욱이 고고학적인 서폿은 전혀 없고 말이다.
이게 존나 조ㅅ같은 논리라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문명의 기원은 국내성과 구부여에 있는데, 원시상태인 우리의 4대강유역과 삼한인, 즉 지금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의 4도민을 갸들이 역사차원의 정복남하작업을 통해서 문명화시켰다. 그런 말이라고.

그 것은 우리문명의 독자발전설을 정면으로 차단한 그런 논거란 말이다.

게다가 그 논거라는 것이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민족의 기원지인 북방의 만주를 재수복해야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이 것이 이러한 사관이 수립되던 시대상황과 견주어 볼 때, 바로 일제의 만주침략을 정당화하면서 조선인에게 그 정복활동에 참가하라는 논거라는 것이고.
이거대로라면 다까기 마사오는 만주의 한민족 레벤슬라움을 회복하러간 민족투사가 되는거지. 씨.발 이게 말이 되나.
야, 씨.발 병.신 아닌다음에야 요즘에도 그런 꼬라지가 일어나잖아. 우크라이나랑 러시아랑 군사작전만 가지고 쌈박질하고 있는거 아니거든. 역사가지고도 존.나 투쟁중이지.
그런데 씨.발 그따구 사관이 그 때 쳐나왔으면 그게 뭐겠냐고? 뻔하잖아.

게다가 역사가들 이 새.끼들도 이미 기존연구만으로도 그 것이 그거라는 것을 자~알 알고 있다고.
그게 뭐냐 언젠가 이 놈들 중 한마리가 그 풍납토성에 의미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 풍납토성의 중요한 의미는 그 것이 우리사적들중 최초의 주변취락에 대해서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유적이라서 중요하다고 씨부렸는데말야, 그 주변에 대한 위계질서라는 것이 실은 그게 이 것이 한국문명의 발상지라고 볼 여지까지 생긴다는 거라고.
뭔 이야기냐면 지금 기존 학자들이 연구자금 타내가지고 요동, 요서 이런 데서 캐낸거, 그거는 주변에 대한 영향력의 흔적이 없는 일개부족취락유적의 존만이에 불과하고, 심지어 그 것들이 한반도와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지도 불투명하고, 걍 우리하고 아무 상관없는건데, 그 위계질서라는 것이 어떤 의미냐면 중국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은허유적 씨.발 그거는 존나 소싯적건데, 그거는 그때부터 주변지역에 대해서 위계적인 취락이었다는 증거를 첨부터 가지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걍 중국의 은허=한국의 몽촌토성이고, 황하문명=한강문명이라는거야. 존나게 압축해서 말하자면.
그리고 몽촌이전의 유적들은 일개부족취락유적 이상의 의미가 없는거지.
여기서 그렇다면 고구려성또한 거기 문명의 발상지라고 볼만한 규모가 되는데, 이 거는 그거는 압록강일대의 갸들이 따로 세운거고, 우리는 우리꺼 여기서 따로세운거라는거지.
부여라는 것은 몽촌이나 고구려성급의 유적조차 부재한 일개 선사시대인류학차원에서 당대사람들이 가졌던 동류의식의 기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웅녀 아님 부여의 선화공주=아프리카의 루시, 그래서 곧 고구려와 백제계는 유전자수 46개의 싱크가 일치하는 같은 인종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면 안된다고, 그 것을 역사수준으로 놔버리면 한제국이나 공손씨세력의 강역이 존나 괴랄해진다니까. 그 맹점을 틈탄 쓰레기사학이 민족사학이라고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쓴 이단사학이 있다.

부여는 한제국강역안의 동이족일 뿐이라는거다.

그리고 봐라봐라 고구려와 백제는 4세기부터는 서로 맞닿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는 전쟁이 벌어지잖아.
그 전쟁이 가장 격화되어 있을 때, 무령왕이라는 왕이 도읍을 공주로 천도하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바꿨어요.
그런데, 이 것이 시기상 고구려와 우리는 한민족, 같은 부여기원 항가항가 이럴려고 바궜겠냐고?
그 때, 백제는 국가지도자급인 좌평들까지 최일선에 투입될 때인데.
그 남부여라는 칭호는 너 부여, 우리도 부여가 아니라 여전히 고시대적인 인류관을 가진 백성들에게 배타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봐야지 부여라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봄직이 마땅하다.
즉 남부여라는 것은 북부여의 대립어로써 고구려, 저 새.끼들은 북부여인, 우리는 남부여인 그러므로 다른 종자.
이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게 봐야지 시대상에 맞지.

실제 삼국사기상으로도 해모수부터 북부여의 해모수라고 썼는데, 여태 이 것도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에 의하면 첨에는 북부여라고 하길래 씨.발 부여북부를 의미하능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런데 지금 북부여=부여라고 드러났거든.
그러므로 북부여의 해모수라는 것은 남부여의 대립어로써 북부여라고 붙은 것으로 통상 부여계라고 지칭되는 해모수로부터 지작되는 아새.끼들은 우리랑 기원이 다르다는 남부여인(=백제와 삼한인)의 인식에 의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왜냐면 그런 기록을 만약 김부식이 당시에는 실존했을 백제서기로부터 차용했다거나 아니면 무령왕이 남부려라는 국호를 쓴 시기로부터 얼마되지 않는 시기의 삼국시대로부터 이어지는 귀족으로써 경주 김씨로써 그 의미를 김부식이 알고 썼다면, 이 거는 신라인조차 우리는 남부여, 저 새.끼들은 북부여가 되는 것이지.
그래서 김부식이 해모수는 북부여인 해모수라고 쓰는데, 여기에는 나와 우리집안은 남부여라는 말은 생략된 것으로 봐야지.
그 것은 부여라는 인류학적인 기원은 지녔으되, 문명성립과 역사단계에서는 각각의 길을 걸어간 실체로 너와 나를 이미 그 때에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무령왕릉의 기록이 발견되는 것이 6세기경이다. 이 때부터 북방계와 삼한은 요단강 건넌거지.

그리고 한성백제말야. 이게 심각하게, 시작부터 전국구였다는 기록조차 있다. 백제가 오왕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백제는 이미 가야, 신라 다 내꺼라고 그러거든.
그런데 봐라봐라. 한강의 지정학적 위치상 한강문명, 혹은 정권이 영남권에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은 거의 100프로라고.
지금이야 고속도로로 경기도와 경상도를 내달리지만, 당대에는 그리고 조선시대까지는 남한강과 새재가 영남과 기호의 가교구실을 했잖아.
그런데, 백제왕도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옆에 있단느 것은 직접복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남권과 소통을 했다는 증거라고.
그 남한강따라서 충주까지 배타고 내려가서, 문경의 고개하나 건너면 경북상주인데 백제가 영남에 대한 영향력이 과연 없었을까?
게다가 한성백제가 한강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고구려가 가야지역에 난입하기 전에는 영남내에서 힘의 역학도 대가야세력이 신라와 금관가야를 누르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말야 우리는 조선마냥 왕이 지방에 관리를 직접파견해야만 지배권이 확립된 줄 아는데, 형식적인 복속이라해도 그 것은 일국의 요건을 만족한단다. 만약 전자와 같이 사고한다면, 그게 근대화된 정치관점의 오류라고.
뭔 얘기냐면, 영국왕이 노썸브리아공작위같은 지방공작령의 행정에 직접관여치 못한다해도 명목상으로는 그 지역까지 포함한 잉글랜드의 왕이듯이 그러한 개념으로 본다면, 한성백제의 강역은 판단할 여지가 많아진다니까.
그러니까 실제 행정적인 간섭은 전혀 할 수 없고, 가야나 신라가 백제에 형식상 복종만 취했다해도 가야와 신라를 백제의 지방정권으로 봐서 백제는 수립으로부터 얼마되지 않은 시점으로부터 한반도의 통일왕조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러한 중앙정권과 지방정권간의 예속성은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중앙권력이 흔들이면 그러한 관계의 지방정권들은 매우 쉽게 독자세력으로 기능할 것이고, 그 결과가 신라위주로 재집합한 영남세력과 백제를 구심점으로 한 호남세력의 삼한내 패권전쟁으로 벌어졌다고 볼 수까지 있는 거라고.

이게 또 다른 경우을 파생하는데, 그 것은 역사는 승자의 것으로 신라는 지들이 이겼으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백제와 대등한 정통성을 지녔다는 의미를 함의하는 삼국론에 입각한 역사를 쓰지만, 만약 백제가 신라랑 가야를 쳐발랐다면, 애초에 삼국론은 부인되고 이 것은 일개 한반도 동남부세력의 반란정도로(그 반란이라는 것이 100년단위가 넘어가고 독자세력화하는 경향을 보였더라도, 그런데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함) 서술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한반도에 몽촌과 풍납토성을 근거지로하는 한반도문명 혹은 한강문명이자 한국인최초의 고대국가인 백제가 수립되어요. 이 것은 문명이자 고대국가인만큼 당연히 주변에 대해서 위계성을 띄는데, 그 영향력이 곧, 미약한 형태로든 가야와 신라지역까지 미쳤던 것 같다.

그런데, 4세기경부터 그러한 한강문명의 백제는 한제국과 동이족사이에서 수립된 신생정권(구정권=공손씨)인 고구려와 충돌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고구려에 패해서 도성까지 상실하고만다.
그렇게 백제가 박살나는동안, 한반도 동남부는 신라중심으로 규합하고, 곧 백제를 당과 연합해서 박살내버린 것이다.
여기서 고구려의 의미는 남하해서 한반도문명의 최초고대국가를 위협하는 북방계왕조라는 것에 국한되며, 고구려를 우리역사로 논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때는 이미 역사시기로써 고구려부계집단과 이 때는 한반도통일세력이라는 표현대신 삼한이라는 표현을 써, 삼한일통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삼한의 최초통일왕조인 백제의 삼한계부계집단은 완전히 다른 집단이고, 이 것은 조선시대에조차 조선인의 6,7할은 삼남인이라고 하는데서도 드러나는 한국은 삼한의 농경민이 수립한 문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실증할 수 없는는 단군이라던가 기자라던가, 고려계왕실들, 조선왕조도 실은 북원의 무장출신이 세운거고, 이러한 북방계들이 지배계급으로써만 기능하였으나 삼한계에 흡수, 동화된 것으로 봐야 맞고, 예맥과 삼한을 동급으로 놓는 것은 이러한 북방계지배계급에 의한 전근대적인 지배가 존재하던 시절의 전근대적인 역사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강밑의 강들, 금강, 영산강, 동진.만경강, 섬진강, 낙동강 이런 데서 발전한 농업문명으로써 삼한인으로써의 아이덴티티를 지녔고, 여기서 우리의 정치적 기원은 한강유역에서 수립된다.
반면, 고구려 갸들은 만주계 혹은 요동문명으로 따로 봐야한다는 거야.
그런데 그 것을 중국이 그 지역을 접수한 뒤에 그 지역민들도 중국인이라고 오성홍기의 오성이 중국오대민족인데, 그 중 하나의 별에 만주계와 고대고구려가 있다. 그게 동북공정인거지.
사실 중국의 그 것도 말도 안되는 것이긴한데, 전혀 순서와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뭐가 아쉽다고 압록강 위의 것이 우리꺼라는거야?
압록강이 다름 아니라 우리민족의 최대판도이며, 신라=청천강, 고려=대동강유역에서 서희가 6주받고 압록강하류까지, 조선이 비로소 4군6진개척으로 압록강유역전체와 두만강까지 확보한 2천년의 역사를 두고 점진적으로 북상하는 전형적인 꾸준히 강역을 넓히는 결코 문약하지 않은 농경정주민족인데, 그 우리최대판도인 압록강 북쪽에 우리 기원이 있다. 이게 말이 되냔 말이다.
차라리 만주정복론으로 갈려면 우리문명이 백제부터 조선까지, 고구려, 몽골, 청같은 북방왕조의 반격을 가끔 받기는 했으나 꾸준히 북상한 정복문명인데, 다음 북방획득영토는 간도와 동북3성이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더 깔끔하지 씨.발 우리 몸의 심장이 내 몸 바깥에 있다는 개구라가 어디서 튀어나오냔 말이다.

그런 견지에서 광개토는 소배압, 살리타, 니탕개, 니하추, 누르하치의 계보의 원조정도로 봐야지. 씨.발 이 놈이 뭔 한국계최대판도의 대왕이냔말야. 말이 되나? 안되지.
진짜 한국계최대판도인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삼한계최대판도는 4군6진개척과 함께 세종과 김종서가 이루었다 그런 말이라고.

마, 그럼 고구려 북방계오랑캐왕조 맞네. 그리고 요즘 진보근대사학자들은 동북3성에 조선족가서 살기 시작한 것도 구한말부터였다고 인정한단다.
고구려가 우리민족이 되려면, 그 이전부터 한국계가 동북3성은 물론이고, 산해관코앞까지 살았어야했어야되는데, 이 거는 걍 개잡소리이고.